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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정리/개발 일기

왜 자꾸 빙빙돌려 돌림판도 아니고

by Kim Juhwan 2024. 10. 6.

 

 

 

나는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남을 배려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간단하게 말하면 되는 것을

내 말을 받아들일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해서 직설적이지 않게, 쿠션어를 가득가득 넣어 전달하는 편이다.

 

나는 이게 맞는 거고 이상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몇몇 사건들을 겪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라.

 

 

 

그래서 어떤 의도로 스레드를 남기신 거예요?

 

 

최근에 백엔드 팀원분께 들었던 말이다.

이분도 나름대로 순화해서 말했지만 숨은 속 뜻은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 뭘 원하는 건데?"였다.

 

회사에서도 나는 '돌려 말하기'를 굉장히 자주 사용한다.

팀원이 실수한 부분을 발견하면 잘못됐다고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게 맞는 건가요? 제가 잘 몰라서 질문드립니다!" 같은...

사실 난 팀원의 실수인 걸 알고 있지만

지적이 아니라 질문처럼 포장해 민망하지 않도록 배려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백엔드 쪽 버그를 발견했는데 다행히도 클라이언트가 자체적으로 막고 있어 문제가 되지는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중으로 막으면 좋으니까 이렇게 메시지를 남겼다.

"이러이러한 부분이 있는데 이중으로 막을 만큼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공유 드려용"

내 의도는 시간 여유가 있으면 막으면 좋고 알아서 판단해서 처리해 주세요였다.

너무 이래라저래라 하면 좀 그런 것 같아서 돌려 말했던 건데

그분이 내 자리로 와서 "어떤 의도로 스레드를 남기신 거냐"라고 묻더라.

그분 입장에서는 그래서 이걸 고쳐달라는 건지 내버려둬도 된다는 건지 의중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는데

이번에서야 "내가 돌려 말하니 상대방이 내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는구나"를 깨달았다.

 

내 화법이 좋은 것만은 아닌 건가?

 

 

 

저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시는 줄 알았어요...

 

 

최근에 소개팅을 하셨던 분께 들었던 이야기다.

 

사실 나는 주말에 소개팅을 하고 싶었다.

평일 퇴근 후에는 아무래도 피곤하고 주말은 신나니까 소개팅이 더 잘될 것만 같은 느낌?

요즘 날씨가 좋으니까 조금 멀리 석촌호수 주변에서 만나 산책도 하고 싶었다.

근데 상대방이 평일 퇴근 후에 회사 근처에서 보자길래

"아! 이분은 소개팅이라는 것에 시간을 많이 쓰고 싶지 않아 하는구나. 적당히 밥만 먹고 보내드려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약속 당일에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나는 이분과 좀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혹시나 부담스러워할 상대방을 생각해서

"여기 주변에는 산책할만한 곳이 있나요?"같은 말들로 돌려 물었다.

 

그래서 결론은... 내 의도는 잘 전달되지 않았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밥만 먹고 보내서 내가 마음이 없는 줄 알았다고 한다.

(TMI지만 친구들에게 썰 풀고 욕 많이 먹었다)

아. 내 화법이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연습을 하자

 

 

그 외에 비슷한 사건들을 최근에 연달아 겪었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있어서 돌려 말하는 것은 배려라는 의도가 깔려있지만

상대방을 헷갈리게 만드는구나

상대방이 오해하게 만드는구나

 

좋다 싫다 의사표현 못하는 아기를 돌봐본 사람은 알겠지만

아기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답답하지 않은가.

여태까지 나랑 대화하는 사람들은 마치 그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이렇게 해달라. 직설적으로 말할 줄도 알아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느낀 점

  • 내 이런 점이 회사에서 단점으로 다가올지 몰랐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와서 쉽진 않겠지만 확실히 고치는 것이 좋겠다.
  • 포스팅이 길어져서 쓰진 않았지만 사이드 프로젝트 팀원에게도 비슷한 피드백을 받았다.
    PM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직설적으로 말해야겠구나 싶다.
  •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래서 소개팅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할 텐데
    소개팅이 어떻게 되었냐면...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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